문장의 끝이 문장의 시작이다
작성자
임국영 작가
작성시간
2019-01-02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1-02
조회수
2064

문장의 비밀은 마지막 어절에 숨어 있다

지난 기고문 ‘멜랑콜리가 당신을 기다린다’를 포함한 나의 거의 모든 글쓰기 노하우는 작문을 대하는 순진한 정신론이 주를 이뤘다.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읽고 쓰는 일을 습관 이상의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뜻으로 하는 말도 한두 번이지 지속적으로 반복해 봤자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최근 들어 엄습했다. 그런고로, 이번에는 극도로(?)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글쓰기 팁을 하나 전하려고 한다. 과장 조금 보태서 교과서는 물론이고 어떤 글쓰기 훈련서적에서도 선뜻 알려 주지 않는,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놀라운 비법이다. 이 노하우의 비밀은 문장의 끝에, 그러니까 마지막 어절에 숨어 있다.


문장의 마지막 어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출처: <고등래퍼>)


산문은 랩이 아니다

갑자기 신뢰를 떨어뜨리는 얘기를 하게 돼서 매우 유감이지만 열네 살 때 처음 소설을 쓴 이후로 비교적 최근까지 나는 문장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아니지. 오히려 문장력이 별로다, 지저분하다, 형편없다… 는 뼈아픈 지적을 들은 일이 부지기수였다. 소설 쓰기에 있어서 이른바 필력이란 독자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몰입하게 만드는 입심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곧 문장력이라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대다수의 작법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강조하는 대목인 ‘문장이 쓸데없이 길다’, ‘하나의 문장에 너무 많은 행동과 지시를 하려 한다’, ‘주술호응이 맞지 않는다’는 이제 와서는 글쓰기 팁이 아니라 차라리 강령이나 절대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개인적으로는 절대 쓰지 말아야 될 나쁜 문장 3대 천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조만간 따로 다뤄 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의 나는 이 세 가지 준칙을 깡그리 어겨 버리는 무자비하고 무시무시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학습능력도 좋지 않은 데다가 하잘것없는 아집까지 지니고 있던 터라 교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한, 10년 정도?

그러나 웬걸,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문장 길이도 짧아졌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담으려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주술호응도 잘 맞는데 어째선지 동료들로부터 문장을 칭찬받는 일이 없었다. 나한테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물어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10대 시절의 한 문우(文友)가(문우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낯 뜨거운 단어인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이미 10대 때부터 발군의 문장력을 선보인 촉망받는 글쓰기 인재였고 실제로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나는 물었다. 어떻게 해야 문장을 잘 쓸 수 있어? 그 친구가 답했다. 문장의 마무리를 살피면 돼. 꽤나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 이라는 허세만 취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오곤 한다. 10년의 시간을 뚫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이제부터 내가 깨달은 지점을 갓 등장한 따끈따끈한 문장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볼까 한다.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오곤 한다.’


이 문장에는 총 7개의 어절이 등장한다. 어절이란 앞뒤로 띄어쓰기가 됨으로써 나누어지는 말의 모음이다. ‘그리고/중요한/깨달음은/늘/뒤늦게/찾아오곤/한다’로 표기할 수 있겠다. 이 중 마지막 어절인 ‘한다’를 기억하자. 바로 다음에 붙는 문장을 만약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10년의 시간을 뚫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로 한다.’


8개의 어절로 이루어진 이 문장의 마지막 어절 역시 ‘한다’이다. 이제 두 문장을 붙여 보겠다.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오곤 한다. 10년의 시간을 뚫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로 한다.’


아직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조금 더 알기 쉽게 문장들을 더 붙여 보겠다.


‘그리고 중요한 깨달음은 늘 뒤늦게 찾아오곤 한다. 10년의 시간을 뚫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로 한다. 하지만 뜻대로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고 한다. 어찌 한다.’


라임 맞추기에 심취한 지난 시절의 래퍼들도 이렇게까지 각운을 맞추려 노력하진 않았다. 물론 이는 의도를 전하기 위한 과장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연속되거나 혹은 근접한 문장의 마지막을 동일한 어절로 마무리하고 마는 것이다. 읽기도 어색할뿐더러 지루하기까지 하다. 특히 문장의 어절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었)다’와 ‘있(었)다’ ‘했다’ 등의 서술어가 연속으로 배치되는 문단과 작문은 거의 공해다. 비경제성과 동어반복은 좋은 문장의 숙적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렇다. 실로 대단한 팁도 아니다. 그러나 문장의 마지막 어절을 살피는 것은 문단 단위로 문장을 점검하면서 글을 쓰고 고치는 게 가능할 만큼 시야를 넓히는 정석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는 같은 문단에 속한 문장 간의 긴밀함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읽어 내리기 쉬운 리듬을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문장에 있어서 리듬이란 베이스 기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막상 부재하고 나면 그 허전함을 채우기 힘들다. 당신이 예전에 써둔 글을 한번 펼쳐 보시라. 그리고 근접한 문장의 중복되는 마지막 어절들을 고쳐 보자.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어떤 의도도 미학도 없는 패턴의 반복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것처럼 지치게 만든다. 독자는 변주를 원한다. 비슷한 정보와 어휘의 연이은 입력은 더 이상 시각을 자극하지 못한다. 리드미컬해야 한다. 이번 기고문에서 내가 글쓰기의 정신론이 아닌 문장구조에 관한 노하우를 다루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말이다!



임국영 작가 | dlarnrdud89@naver.com

아침에 잠들고 밤에는 일하며 새벽에 소설을 쓴다. 농담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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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체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