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은 어른도 재밌다
작성자
구현우 시인
작성시간
2019-07-30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19-07-30
조회수
118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첫”의 힘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는 위인전 시리즈가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더불어 과학 백과나 동화, 파브르 곤충기도 있었다. 벌레를 안 좋아해서인지 파브르 곤충기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그 이상으로 종이가 닳도록 읽은 책이 있었다. 바로 시튼 동물기였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이였으므로, 앉아서 책을 보기보단 운동장을 뛰어놀기를 훨씬 좋아했다. 그런데 시튼 동물기만은 예외였다. 동네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읽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게 우선이었다. 매일 최소한 한 권씩 읽어 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뜻 손을 대고 읽은 최초의 책이었다.


놀라운 첫 경험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시튼 동물기를 읽은 덕에 초등학교 내내 “글쓰기”라는 걸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내가 본 시튼 동물기 번역본은 표준 맞춤법이 ‘~읍니다’로 된 책이었다. 선생님들께 수차례 지적을 받아도 ‘~습니다’를 보거나 적는 게 훨씬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껏 둘 중 무엇을 사용해도 무관했다면 나는 계속 ‘~읍니다’로 사용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에서 익힌 것이었으니까.


개나 고양이를 키운 적도 없는데, 만난 적 없이 여러 동물을 그저 글과 삽화를 통해 상상으로 본 게 전부였는데, 나는 온갖 동물을 사랑하게 됐다. 특히 개와 늑대와 순록은 인간보다도 인간답다고 믿어 왔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 경험은 지금의 내 글쓰기와도 크게 밀접해 있다.


눈앞에 없는 너를 마주하는 시간

당신에게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기에 따라 바뀔 것이다. 독서란 작품 자체로 갖는 힘도 중요하지만 읽는 이의 마음, 기분, 상태에 맞춰 달라지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10대에 읽은 『데미안』과 20대 나아가 30, 40대에 읽은 『데미안』이 같을 리 없다. 매번 다를 것이다. 똑같은 문장도 다르고 새롭게 읽힐뿐더러 과거엔 무심히 넘어간 이미지도 현재의 나에겐 지독히도 잘 보일 수 있다.


그러니, 변할 리 없는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당신에게 있어 인생 최초의 책은 무엇인가. 팩트를 묻는 게 아니다. 처음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독서에 관한 질문이다. 당신이 텍스트로 마주한, 실제 눈앞에는 없는 대상과 세계를 마주한 일에 관하여다. 읽기만 했든, 읽고 독후감을 쓰기까지 했든, 그 시간은 오랫동안 당신의 글쓰기와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읽고 쓰고 공부하던 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재’의 언어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믿었다. 어릴 때야 당연히 말을 잘 못했고, 알고 있는 것도 많이 없었으며,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의식 또한 없었으니 그게 작가로서의 글쓰기와는 당연히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말에 멋을 부리기나 급급했다. 신기하거나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수집했다. 잘 쓰인 글은 있어 보이는 글 같았다. 나를 깨워 준 사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나는 종종 엄마에게 글을 보여 드리곤 했는데, 엄마의 한 마디는 내가 무슨 글을 써 왔고, 쓰고 있고, 써야 하는지를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잘 쓴 거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인지는 너무 어려워서 난 모르겠네.” 내게는 그 말이 정말로 큰 충격이었다.


이토록 가까운 사람조차 설득할 수 없는 글이 무슨 소용이람. 왜 그런 걸까. 이유는 꼭 기술적인 부분에 있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현재와 앞으로 올 미래에서만 소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이 내 글을 볼 때 즐겁지 않구나. 그럼 나는 누구 글을 볼 때 즐거웠더라. 노트를 폈다. 오래전 읽었을 때 즐거웠던 책을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서 베껴 보기 시작했다. 좋아했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니까 신이 났다. 특이한 단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졌다. 잘 떠오르지 않는 부분들은 마음대로 각색해서 썼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늑대 왕 로보>라는 말을 빼면 하나도 들어맞는 부분이 없었다. 내가 불러온 로보는 대도시를 기웃거렸고 물수리 사냥을 했고 심지어는 한국말도 어느 정도 구사했으며 자기 무리에서는 끝끝내 찬밥 신세였다. 이게 무슨 늑대 왕이야……? 하지만 쓰는 내내 재밌었다. 나는 달려가서 엄마에게 보여 줬다. 엄마와는 어릴 적, 내가 졸라서 자주 시튼 동물기를 함께 읽곤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 로보가 그 로보라고는 떠올리지 못하는 듯했다. 저번에는 경험담이었고, 이번에는 픽션이니까 더 어려워하지 않을까 했다. 의외로 술술 읽어 가던 엄마가 말했다. 이건 재밌네.


막연하게 쓴 경험담보다 구체적으로 쓴 만든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갔던 것이다.


좋아했던 이야기를 ‘나’가 다시 쓰면 즐거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리메이크다. 이와 같은 모방을 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원본을 자기 주변에 다시 갖다 두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듬더듬, 도면 없이 미로의 출구를 찾는 심정으로 하는 게 차라리 낫다. 답을 알고 따라가자는 게 아니니까. 어디서 들은 유쾌한 에피소드를 다른 이에게 말해 준다고 생각하자. 당신이 읽었을 때 즐거운 이야기는 쓸 때도 즐겁다. 슬럼프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면, 목적을 띤 글쓰기에 지쳤다면, 그렇게 한 번쯤 오래된 기억을 따라 써 보았으면 한다. 레고 블록을 이리 쌓고 저리 부수며 놀던 쾌감을 다시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현우 시인 | stoyer@naver.com

눈 뜨는 기분으로 시를 쓴다. 숨 쉬는 마음으로 음악을 한다. 

듣거나 보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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