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없는데 지글거리는 소리만 나는 디지털 교육?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07-09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미국 혁신학교 소식이 요즘 들어 뜸해졌다. 수년 전만 해도 구글이 거액을 후원한 칸랩스쿨, 페이스북이 미래학교라고 극찬하며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서밋스쿨 등이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언론은 혁신학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바빴다. 당장이라도 전통교육이 바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보다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가 나온 것도 이때쯤이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명문대학보다 경쟁률이 높은 학교라니. 혁신학교의 '교육 실험'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혁신학교를 비추던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고 커튼은 닫혔다. 무대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신장개업한 식당에 손님이 구름 떼처럼 몰리는 것이 단순 개업발인지 아니면 진짜 맛집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진실은 베일에 싸여 있다.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엔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은 부정적이다. 지난 5월 경제 매체 <포브스>는 오래간만에 혁신학교와 관련한 기사 하나를 게시했다. 제목은 New Report: Zuckerberg’s Favorite Digital Ed Program Is All Sizzle, No Steak”(고기는 없고 지글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디지털 혁신학교)다. 미국의 비영리 교육정책 연구 센터인 National Education Policy Center(NEPC)의 서밋스쿨 연구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인데, 한 맺힌 사람이 쓴 듯 내용이 좀 신랄하다.
 
NEPC는 서밋스쿨이 실제 성과에 비해 과대평가된 학교라고 총평했다. NEPC가 문제로 지적한 것은 '일방적 주장(Big Claims)', '적은 증거(Little Evidence)', '막대한 투자(Lots of Money) 등 3가지다. 우선 이 학교의 학습모델이 검증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서밋스쿨 측은 '증거기반', '과학기반' 교육을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근거를 대거나 제3자의 검증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학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란 입장이다.
 
실제로 외부기관이 서밋스쿨 커리큘럼을 평가한 사례는 아직 없다. 서밋스쿨 시스템이 4년제 학교 진학에 100%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또한 검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일반 학교보다 두 배 넘는 대학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말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명 인사, 막대한 자금으로 인한 착시 효과도 거론했다. 서밋스쿨은 지난 2003년 개인 맞춤 학습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설립됐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2014년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이 회사에 물적 인적·지원을 결정한 다음이다. 이후 투자가 잇따르면서 입소문을 탔고 전통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학교 모델로 떠올랐다. 서밋스쿨의 학습 프로그램 '서밋러닝'을 적용한 차터스쿨(Charter school; 대안학교 성격을 지닌 공립학교)은 미국 내 500개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NEPC는 이를 '후광효과'로 묘사했다. 좋은 광고모델(주커버그)을 쓴 덕분에 뜬 것이지, 실제 제품(서밋러닝)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빅스타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평가 절하한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건 서밋스쿨만이 아니다. 알트스쿨은 실리콘밸리 혁신학교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거론된다. 학교 수업이 효과가 없다고 느낀 부모들이 자녀를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면서, 이탈하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 4년 동안 6개의 학교를 차린 알트스쿨은 현재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 이 학교는 혁신학교 모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나 연구 보고서에 나오는 단골 메뉴가 됐다.
 
이 두 학교에 대한 비평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실리콘밸리가 자랑해 마지않는 IT 기술이 실제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자료는 많지 않다. 기존 지필고사나 입학시험에 적합한지에 대한 검증도 충분히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일부 학교, 하나의 사례만 가지고 혁신학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해선 곤란하다. 현재 ‘실리콘 스쿨 펀드(Silicon School Fund)’의 지원을 받는 혁신학교는 50개에 이른다. 지난 2018년 38개에서 12개 늘었다. 이 학교들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능력 등 역량 중심의 수업을 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나 구체적인 교육 방식부터 지향점, 학비까지 모두 제각각이다.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해선 곤란하다.
 
실익이 없다는 측면도 있다. 실리콘밸리 혁신학교는 교육과 기술의 결합체인 ‘에듀테크’를 실제 교실에 본격적으로 접목한 최초의 시도다. 이는 전통학교에 신선한 충격을 줬고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영수 위주의 커리큘럼을 역량 중심으로 전환한 시도 자체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른 학교들이 배울 점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고장 난 부분은 고쳐 쓰면 된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아예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건 우리 교육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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