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34시간만 일하는 교사의 비밀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09-10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20-09-10
조회수
38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은행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지만, 은행원의 업무 시간은 그것보다 길다. 지점 셔터 문이 내려간 후엔 서류 작성이나 돈 액수 맞추기 같은 잔무가 이어진다. 교사의 근무 시간표도 이와 비슷하다.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쳐도 교사의 업무는 계속된다. 다음 수업에 필요한 교보재를 준비하거나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학생별 평가와 시험지 채점, 학부모 상담까지 진행해야 비로소 하루 일과가 끝난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 이상으로 잡무가 많아서 교단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교원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은 매년 16%의 교사가 일을 관두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업무 과중으로 인해 교사의 81%가 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영국 교사 10명 중 8명이 품속에 사표를 넣고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교사가 도대체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기에 업무 과중이란 말이 나올까. 우선 업무 시간만 놓고 보면 그리 길지 않다. 미국, 영국의 교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50시간 정도다. 그런데 생각보다 교실 밖에서 이뤄지는 업무가 많다. 최근 컨설팅 전문회사 맥킨지가 캐나다, 싱가포르, 미국, 영국 등 4개국 교사 2,000명을 대상으로 업무별 소요 시간을 계산해 봤더니, 학생 지도가 16.5시간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는 수업 준비(10.5), 평가 및 피드백(6.5), 행정(5), 학생 코칭 및 조언(4.5), 학생 훈육(3.5), 개인 개발(3) 순으로 이어졌다. 교사 업무의 67%가 교실 밖에서 이뤄진 것이다.
 
물론 수업 준비나 평가, 피드백 또한 교육의 연장선이다. 학생들을 직접 보고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다. 수업 외 업무는 축구선수가 볼을 더 잘 차기 위해 근력 운동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학생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또 다른 교육 활동이다. 대면 수업과 비교해 경중을 따질 수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업무과중'을 운운하는 이유는 학생을 직접 지도하고 가르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교사의 삼분의 일은 '개인별 지도'에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교사의 69%가 개인 지도에 가장 걸림돌로 '시간 부족'을 꼽았다. 이들은 시간만 확보된다면 좀 더 개인화된 수업을 통해 학생의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돈이 부족해서 못한다는 교사는 36%, 학습재료와 기술-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교사는 각각 33%, 22%였고, 스스로 개인화된 학습 스킬이 부족하다고 답한 교사는 13%에 불과했다.
 
교사를 더 뽑거나 일부 업무 비중을 낮춘다면 개인 맞춤 수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국가마다 교사 채용에 배정된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제반 업무 또한 대면 수업만큼 중요해 줄이거나 빼기 어렵다.
 
맥킨지는 이 시간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디지털 기술을 제시한다. 교사가 수작업으로 하던 업무들을 에듀테크(Edutech) 기술로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교육 서비스만 활용해도 수업 준비 시간은 약 절반으로 줄어들고 평가 및 피드백은 3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AI 프로그램 ‘Bakpax’를 이용하면 채점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손 글씨를 컴퓨터 텍스트로 전환해 의미를 파악하고 정답 여부까지 가려내는 데 까지 몇 초 만에 끝난다. 학생은 종이 위에 답안을 작성한 뒤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그만이다. 교사는 Bakpax가 정리한 평가 결과를 슥 훑기만 하면 된다.
 
이 밖에도 현존하는 앱과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행정 업무는 3시간 정도 단축할 수 있다. 학생 지도는 2시간, 개인 개발은 0.5시간 줄어든다. 종합하면 주당 평균 근무 50시간 중 15.5시간, 즉 30%의 업무를 기계에게 넘기는 것이다. 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제조업 생산직 종사자들이 단순 근로에서 해방된 것처럼 교사 또한 에듀테크의 힘을 빌려 더 흥미롭게 생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개인 맞춤 지도에 목말랐던 교사라면, 그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단, 기술이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학생 훈육과 학생 코칭 및 조언 분야다. 이 부분은 둘 다 0으로 집계됐다. 제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AI)이라 해도 인간 고유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학생과 상호작용을 하는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면에서 AI가 인간 교사를 조만간 대체할 것이란 우려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이 AI 로봇에 연애 감정을 느끼고 서로 감정을 교류하는 건 아직까지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다. 훈육이나 코칭, 조언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며,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AI에 완전히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말이다. 오히려 교사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맥킨지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내 교사 수가 5~24% 증가하고, 중국이나 인도같이 인구수가 많은 나라는 100% 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기술은 교사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교사에게 신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기꺼이 이용해야 할 지렛대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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