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를 입어야 원격교육에 성공한다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10-16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지금 가면 만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지는 않을까. 뮬라는 복잡한 생각을 뒤로한 채 투명 비닐로 된 레인코트를 몸 전체에 둘렀다. 코와 입은 비말 마스크로 가리고 장갑도 꼈다. 이 정도 완전무장이면 아이들을 깊게 포옹해 줘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게 뭐라고 가슴이 떨린다. 뮬라 실바는 브라질 리우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 맡은 반 아이들은 60명이 조금 안 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7월 무렵, 뮬라는 반 아이들 집을 일일이 찾아 나섰다. 아이들은 교사를 무척 반겼다. 컴퓨터 화면 속에 있던 선생님이 자신을 직접 만나러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동받았다. 학부모들 또한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이,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어려운 요즘이다. 당연했던 일상을 그리워해야 하다니. 교사의 가정 방문도 그렇다. 뉴스거리도 안 됐던 것이 지금은 감동 스토리로 여겨진다. 뮬라 실바 이야기는 유엔(UN) 뉴스룸의 '코로나19 응답' 코너에 올라와 있다. 이 뉴스는 구글이 격오지 학교에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버라이즌이 5G 네트워크를 무료로 설치한다는 소식과 함께 실려 있다.

사실 원격 수업에 가장 큰 장애물은 마음이다. 마음이 안정된 상태라야 공부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끈기와 인내심도 필요하다. 원격 수업은 100미터 경주가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속도로 오랫동안 뛰어야 하는 마라톤과 닮았다. 그런데 이 마라톤은 셋이 함께 뛰는 삼인사각 경기라서 서로 간에 마음이 통해야 결승선에 가닿을 수 있다. 보폭과 속도, 방향을 일치시켜야 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3자가 소통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만큼 중요한 이유다.

지난 8월 뉴욕타임즈(NYT) 주최로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도 소통이 화두였다. 직접 만날 수 없는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숙제 내주고 점수나 매기는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나 우려했다. 이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들을 개별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실제 방식은 소소했다. 학기 초에 각 가정에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것, 원격 수업 시 아이들의 이름을 최대한 많이 호명하는 것, 틈나는 대로 엽서를 보내는 것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방식이야 어찌 됐든 학생이 '관심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게 중요했다.

교사 본인의 마음도 챙겨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집에서 근무한다는 한 교사는 주방을 일터로 정해 놓고 거기서만 일한다고 한다. 그는 나머지 공간에선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다. 3시 이후엔 컴퓨터를 꺼 버린다는 교사도 있었다. 밀려오는 이메일과 채팅 댓글, 각종 평가의 압박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려는 노력이란다. 책상 밑에 페달 기구를 놓고 걷기 운동을 하는 교사, 잡다한 시험을 줄이고 학생이 핵심 내용을 이해했는지만 평가하는 교사도 있었다.

마음을 챙겨야 함에 있어서 학부모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학생 숙제는 부모의 몫'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학부모에게 지워진 짐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칸 아카데미'의 창립자이자 원격 교육의 선구자로 통하는 살만 칸도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계선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나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다 할 필요도, 다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살만 칸은 지금 하는 일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느끼면, 바로 교사에게 말하라고 조언한다. 이때 다짜고짜 따지거나 비난하는 조로 말하기보다 상황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사 역시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 것이란 사실을 인정했을 때, 원격 수업은 그나마 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배려와 관심의 우비 한 벌이 교육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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