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가 만든 PB 스마트러닝?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10-08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19로 '스마트러닝(smart learning)'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집에서 원격으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밖은 위험하다. 학원비에 비해 훨씬 저렴한데, 퀄리티는 그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효율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온라인상에 학습 데이터가 남아 실력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대처도 한다. 이쯤 되니 집 밖이 안전해져도 굳이 나가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따라온다. 교육 회사들은 앞 다투어 스마트러닝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물 만난 고기 같다. 대박을 터뜨린 할리우드 영화가 본편에 그치지 않고 계속 속편을 내는 것처럼, 대상 연령대를 확대하고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양산하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러닝 시장이 생각보다 좁다는 점이다. 호수인 줄 알았는데 웅덩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블루오션이었지만, 어느샌가 레드오션이 됐다. 먹이가 제한적이니 경쟁만 더 치열해진다.

최근엔 태생이 다른 물고기까지 등장해 작은 생태계를 휘젓고 있다. IT 기반의 스타트업들이다. 스마트러닝 돌풍의 진원지를 가보면, 어김없이 테크(tech) 기업이 있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풀이과정을 알려 주는 수학 앱, 인공지능 기반의 영어 회화 튜터, 컴퓨터 없이도 배울 수 있는 코딩 등 입소문을 탄 서비스는 모두 IT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IT 기업의 본산인 실리콘밸리가 스마트러닝 시장을 주도한 지 오래다.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 알트스쿨(Alt School), 칸랩 스쿨(Khan Lab School) 등이 그 주역이다. 실리콘밸리의 자금력, 혁신기술, 공립학교들의 지지에 힘입어 실리콘밸리는 IT 본산을 넘어 차세대 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에듀테크(edutech) 유니콘 기업 7개 중 6개가 중국 스타트업이다. 이들 중엔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화상 영어 업체 VIP키드와 후지앙, 에이지오브러닝 등이 있다. '에듀'와 '테크'의 저울추가 점점 테크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이게 끝이 아니다. 통신업체들도 스마트러닝 시장에 가세했다. 이전까지 통신업자는 스마트러닝이란 집에 초대된 게스트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콘텐츠 유통에 만족하지 않고 제작까지 손을 댔다. 아마존과 쿠팡이 자체브랜드(PB)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것처럼, 교육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PB 스마트러닝은 모든 PB 제품이 그렇듯이, 제법 쓸 만하다. 가성비를 따지는 학생 입장에선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SKT 스마트 학습지, 버라이즌(Verizon) 홈러닝이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 관련 업체는 힘이 들겠지만, 소비자에겐 이득이다. 경쟁 과정에서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가격은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교육 소비자인 학생은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가 양질의 스마트러닝 서비스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뭐가 좋은 서비스인지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스마트러닝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같은 생소한 IT 개념이 들어간다. 설명글을 봐도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다.

광고를 그냥 믿을 수도 없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과장광고가 판을 치고 있어서다. 이것만 하면 입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고 수학 문제도 뚝딱 풀 것이란 환상을 학생들에게 심어 주고 있다. 빅스타 모델을 이용한 광고도 올바른 판단에 장애물이다. 화려한 연예인의 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겨 정작 서비스를 꼼꼼히 뜯어보지 못하게 한다. 주변에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다. 시중에 나온 최신 스마트러닝을 두루 경험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물이 넘쳐나는데 마실 물을 못 구하는 꼴이다.

스마트러닝이 범람하는 시대,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교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민간 스마트러닝 도입을 확대해야 한다. 내부 자원만으로는 온오프라인 연계 수업을 꾸리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최근 정부가 ‘K-비대면 바우처 플랫폼’에 에듀테크 서비스를 추가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초중고 학교는 이곳에서 저가에 에듀테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교들이 IT를 활용한 수업과 플랫폼, 온라인 콘텐츠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옥석을 가릴 만한 안목 또한 길러졌을 것이다. 일부 앞서가는 교사들은 코로나 이전부터 에듀테크를 활용해 와 지식수준이 준전문가급이다. 스마트러닝이 늘어날수록 ‘판단자’로서의 학교 역할이 점점 더 부각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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