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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중등팀이 고민한 것들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청탁받은 글을 써서 '종종' 밥벌이를 하고 있다. 여기서 '종종'이라는 말이 내 일을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종종. 가끔. 이따금. 어쩌다 일이 들어오면 나는 글을 쓰고 돈을 받는다.
프리랜서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 출근하면 책상 위에 할 일이 놓여있는 직장인들처럼 규칙적인 업무가 없다. 동료도 회의도 퇴근도 없다. 그래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 보면 아침에 책상에 앉았다가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허다하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혹시라도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건네면 더 이상 작업 의뢰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둘이 생긴 후로 나는 거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육아와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어느새 자정. 일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체력이 따라준다면 좋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해 불편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잠든다.
평일이 아니면 주말에 일해야 한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에 엄마가 빠지면 미안하다. 내 마음도 편치 않다. 나에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몇몇 일을 해냈지만, 차츰 원고 청탁을 미루게 됐다. 다른 일이 또 생기면 꼭 다시 연락 달라고 부탁했지만, 내 사정을 이해하고 다시 일을 맡기는 클라이언트는 거의 없다.
2년 전에 계약한 책 작업도 임신하고 중단했다. 쌍둥이를 품은 고위험 산모였기 때문에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언제든 다시 책을 쓸 수 있다는 반짝이는 위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게 금요병이 생겼다. 금요일 밤만 되면 우울해졌다. 주중에 지친 몸과 마음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이더니 찰랑 넘쳐흘렀다. 나는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뭐라도 쓰고 싶어.”
이런 금요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나는 무작정 뭐라도 쓰기로 했다. 평일에는 짬짬이 책을 읽고 메모를 한다. 새벽까지 책 읽다 잠드는 날이 늘었지만, 다음날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다. 주말에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오전 시간을 빌려 글을 쓴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 초조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쓴다. 누가 부탁한 일도 아니고 가계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라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글을 쓴다. 그나마도 남편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아이가 있는 여성 프리랜서 작가의 삶이다. 아이들이 제법 클 때까지 이 삶은 계속될 것이다. 홀가분하게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 쓰는 시간. 언제일지 모를 멀고도 아득한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가끔 턱밑까지 숨이 막힌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좋은 엄마도 좋은 작가도 되고 싶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 나 자신이 없다. 이 또한 언젠가 수월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다.
그러다 우연히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었다. 내 처지와 비슷해서인지 메건 오코넬이란 에세이 작가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아이를 낳는 일을 인생의 폭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진짜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글쓰기를 생각했고 글을 쓰는 공상을 했다. 아기를 돌보는 단조로운 일상에 갇혀 있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에세이를 썼다. 나는 글 쓰는 시간을 늘릴 방법만 생각했다. 출판사나 타깃 독자층, 원고료, 마감 일정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혐오에 빠져 일을 회피하거나 추측하거나 선망하는 일도 없었다. 더 이상 우물쭈물하거나 결말을 추측할 시간이 없었다. 정당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하려면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글을 계속 써야 했다. 앞으로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으려면 계속 써야만 했다. 새로 맡은 엄마라는 역할과 여기서 비롯된 혼돈 속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에 매달렸다. 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 역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메건 오코넬
그제야 내가 왜 금요일 밤마다 울면서 글쓰기를 갈망했는지 그 이유가 선명해졌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고, 내 인생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 역할을 지키고 싶었다.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그냥 지금처럼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비록 금요일 밤마다 울더라도, 가끔 숨이 턱까지 차오르더라도, 밥벌이도 안 되는 글을 쓰더라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엄마 역할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글 쓰는 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주 꺼내 읽어보는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글을 덧붙인다. 나와 같은 글 쓰는 엄마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라며.
내가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때이다. 당시 내겐 아기가 둘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썼으며 침실의 낡은 화장대에 앉아 글을 썼고,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하고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개들이 내게 침을 질질 흘릴 때에도 글을 썼고 고양이들이 내 원고에 먹은 것을 게우는 가운데에서도 글을 썼다. 돈이 없을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썼다. 마침내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강인한 성품을 지녔거나 자존감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순전히 고집과 두려움으로 글을 썼다. 내가 정말 작가인지 아니면 교외에서 미쳐가는 애 엄마일 뿐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고수리 | brunch.co.kr/@daljasee
'KBS 인간극장' 과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팀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카카오 브런치에 '그녀의 요일들' 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에세이<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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