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찾는 학습 서비스,
홈런 중등팀이 고민한 것들
출처: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
‘코로나19’가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당분간 학생들은 교실이 아닌 내 방 책상 앞으로 등교하고, 교사 대신 컴퓨터 화면을 마주해야 한다. 옆자리엔 학우 대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 부모님이 있을 것이다. 맞벌이 가정 학생이라면 혼자 밥 먹고 혼자 공부하는 ‘나혼자 산다’를 찍어야 할 수도 있다. 학습 환경뿐 아니라 시험 일정도 바뀌었다. 학생부 마감일과 수능일이 나란히 뒤로 밀렸다. 고3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험이 될 수 있는 대입 수능을 11월이 아닌 12월에 치르게 생겼다.
수능만 연기된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웬만한 시험은 다 미뤄졌다. 중국은 코로나19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대입시험 ‘가오카오’를 한 달이나 연기했다. 미국 대입시험인 SAT와 ACT는 최소 오는 5월까지 열리지 않는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학생들의 문제다. 매년 세계 210만 명의 학생이 SAT 점수를 들고 대학 문을 두드려 왔다. 공부할 시간이 더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초를 쪼개서 공부를 해왔던 학생 입장에선 결승점이 뒤로 밀린 것과 다름없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거나 스텝이 꼬일 수 있다.
아예 사라진 시험도 있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가 여름학기까지 누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5~6월에 열리는 GCSE, A-Level 시험을 아예 폐지했다. 그래도 진학은 시켜야 하니 시험 성적 대신 일종의 내신 점수를 보기로 했다. 그동안 축적된 모의고사 점수, 교사의 학생 평가, A-Level 예상점수가 평가 대상이다. 꾸준히 달려왔던 학생에겐 희소식이나 막판 스퍼트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 놨던 학생에겐 천청벽력 같은 소리다. 한 번의 시험으로 그간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는 없다.
게임의 룰이 바뀌자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수생과 부유층 자녀들만 유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똑같은 조건인데 뭐가 불리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충분히 나올 만한 얘기다. 공교육이 어수선한 틈을 타 사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과 과외, 각종 스마트 기기를 동원할 여유가 있는 가정이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높다. 시험 대신 내신을 보는 쪽은 분위기가 더 험악하다. 교사의 학생 평가를 과연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점수로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시험과 달리 영국식 학생 평가는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한 영국은 학생이 이의제기를 하고 재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다만 재시험은 해당 학기가 아닌 다음 학기에나 열린다.
국제바칼로레아(IB)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여지를 남겼다. 5월로 예정된 시험이 폐지되면서다. 주관사인 스위스 비영리공적교육재단 IBO는 5월 성적 대신 그동안 기록한 시험 데이터, 개인 데이터, 과목 데이터를 토대로 최종 점수를 ‘유추’해 수료증을 주기로 했다. 학기 중 성취도가 높았던 학생은 자동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겠지만, 최종 시험에 모든 걸 걸고 준비해 온 학생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IBO도 영국처럼 재시험의 여지를 열어 놨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11월에 열리는 시험을 치르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따르는 시간 낭비와 감정 소모는 오롯이 학생의 몫이다.
시험 연기에 따른 각종 우려와 논란은 시험이 갖춰야 할 핵심 덕목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바로 공정성이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시험은 학생 개인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할 뿐 아니라 다른 이와의 실력 격차를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척도로 여겨진다. 대학 입시와 취업, 진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1점 차로 수백 등이 왔다 갔다 하는 우리나라는 시험 결과에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누구도 시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현행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주관식 시험 비중을 높이고 일회성 평가 대신 학습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공정성 문제가 늘 발목을 잡는다. 일부 지자체에서 IB시험을 도입하고 주관식 문항을 늘리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테스트 단계일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현행 시험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 대안으로 떠오른 시험의 공정성에 대해 숙고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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