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교육 커리큘럼, 줘도 못 쓰는 이유

작성자 
윤석진 기자
작성시간
2020-07-02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몇 번의 인터넷 검색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미국인이 영어를 쓰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듯이 각종 IT기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필요한 정보를 습득한다. 이들에게 지식은 곧 검색이다. 엄지손가락을 재빠르게 놀리는 자가 지식인으로 통한다. 이렇다 보니 많이 알아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머릿속에 잡다한 지식을 넣을 필요 없이 인터넷상에 있는 정보를 그때그때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사회·문화 상황이 급변하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다. 정보의 유효기간이 짧아진 셈이다. 어제 맞던 답이 오늘 틀린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또한 지식 축적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암기를 잘해도 빅데이터로 무장한 AI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 스펙이 좋은 사람이 더 이상 인재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기업이 역량을 갖춘 인재 채용에 목을 매는 이유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학력이나, 스펙, 집안 같은 외적 배경보다 개인의 역량을 중시하고 있다. ‘역량’(力量)은 ‘어떠한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다. 구성 요소로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동심(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 등이 있다. 앞 글자가 다 ‘C’로 시작해 ‘4C’로 불리기도 한다. 4C는 단순 지식과 달리 사회·경제적 상황이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하며, 당분간 AI가 대체하기도 어려워 ‘미래 역량’으로 여겨진다.

기업이 바뀌면 학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학교가 취업 기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동떨어진 채 연구만 하는 상아탑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엿한 경제인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능력을 길러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면에서 미국 학교들은 다른 나라보다 몇 걸음 앞서 있다. 미국엔 4C와 연관된 커리큘럼을 판매하는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다. ‘EdLeader21’은 21세기 교육 지도자 전용으로 설계된 학습 네트워크로, 4C 성취도를 측정하고 지도하는 노하우를 담은 커리큘럼 ‘마스터 루브릭 세트’를 판매한다. 학교당 250달러(30만원)로, 벌써 200개 지역에서 이걸 활용해 교육 중이다.
 
무료로 커리큘럼을 공개하는 곳도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부르킹스연구소’는 OAA(Optimization Assessment for All) 프로젝트를 발족하고 주기적으로 핵심 역량 교수법과 채점표를 게시하고 있다. 이걸 활용하면 토론 참여도에 따라 0~3점을 부여해 ‘소통’ 실력을 평가하고, 적절한 논증과 설명 여부에 따라 0~2점을 주는 식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다.
 
이처럼 4C 커리큘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이를 적용하는 학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컨센서스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학교나 교육당국이 역량 교육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르킹스연구소는 지난 6월에 발간한 OAA 보고서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국가들 중 아직까지 역량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와 설명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없다. 21CS(21세기 스킬)이 최근에 정규 교육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기술을 설명하는 학습 커리큘럼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래 역량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그걸 어떻게 키우고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기존 지필 시험이나 객관식 평가로는 미래 역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정도의 문제의식만 공유할 뿐이다.
 
현직 교사들도 충분히 준비가 안 된 모습이다. 교사 본인이 창의력, 비판적 사고를 배운 적이 없다 보니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당장 누가 교육을 담당해야 할지도 모호하다. 국어를 공부한 교사는 국어를, 수학 전공자는 수학을 가르치는데, 창의력은? 여기서부터 걸린다.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평가가 공신력을 확보하려면 실력 검증 기능과 더불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실력 검증은 실제로 해당 분야의 역량이 발휘되는지 확인해 보면 될 일이나, 공정성은 문제의 결이 다르다. 연구 기관이나 학교에서 평가가 공정하다 주장해도 외부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토익 시험이 진짜 영어실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어찌 됐든 공정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특히나 교육열이 높고 입시 경쟁이 극심한 우리나라에는 객관식, 단답형 위주의 전통적인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인식의 전환 없이는 4C 커리큘럼을 학교에 전면 도입하긴 어려울 것이다. 역량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육성하고 평가의 공정성을 알리는 일에 역량 교육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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