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앞세운 메달보다 중요한 선수의 목숨

작성자 
최화진 기자
작성시간
2020-08-13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연재 소개 - < 미디어로 세상 펼쳐보기 >

정보를 접하는 통로가 전보다 다양해졌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내용이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가짜뉴스를 읽고 잘못된 내용을 접하거나 댓글만 보고 왜곡된 시각을 접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속 정보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려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런 취지를 바탕에 두고 초등학생 수준에 맞게 시사 이슈를 쉽게 풀어낼 예정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접하고 자기만의 관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잘하기보다 오래 운동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운동을 사랑했던 22살의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경북 경주시 트라이애슬론팀(철인3종경기)에서 폭행 등에 시달렸던 고 최숙현 선수는 세상을 등지기 전인 지난 6월26일 어머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 줘.”
 
경북지방경찰청은 수사 결과 폭행과 강제추행,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 혐의로 최 선수가 속했던 팀의 ‘팀 닥터’ 안 아무개 씨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감독인 김 아무개 씨는 폭행‧사기‧강요 등의 혐의, 선배이자 동료선수였던 장 아무개 씨도 폭행과 강요 등의 혐의로 각각 구속됐습니다.
 
지금까지 조사로 드러난 상황을 보면, 최 선수는 복숭아 한 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습니다. 체중 조절에 실패했다는 벌로 사흘간 밥을 굶기거나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고 새벽 1시까지 빵 20만 원어치를 강제로 먹여 토하기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최 선수는 이미 올해 2월부터 경주시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에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후 대한철인3종협회, 경주경찰서와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등에 가혹 행위와 상습적인 폭언‧폭행에 시달렸다고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관도 그를 보호하거나 지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인권위가 2019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실업팀 선수 1251명에게 실시한 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신체 폭력 피해를 본 사례는 326건(중복응답 포함)이었습니다. 피해를 경험한 선수 가운데 67%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침해 신고조차 어려운 현실임을 보여 주는 결과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단체생활을 하는 학생선수는 이런 폭력에 반복 노출되면서 본인이나 다른 이들이 피해를 당해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력이 일상화되는 생활과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 자신도 모르게 무뎌지는 것입니다. 영화 <4등>은 이런 현실을 잘 담았습니다. 수영을 너무 좋아하지만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12살 준호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가르치게 된 새 코치가 성적을 위해 학생선수에게 자행하는 스포츠계의 대물림되는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 선수의 사망 이후 ‘최숙현법’으로 불리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이에 따라 이 법의 1조인 ‘목적’에서 “국위선양”이라는 문구가 삭제됐습니다. 국위선양은 나라의 권위나 위세를 널리 떨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구 대신 “연대” “인권” “행복” “자긍심” “공동체” 등으로 대체했습니다. 체육의 목적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즐거움이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1962년 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은 한국 국가체육을 규정하는 최상위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위선양을 위해 메달과 성적주의에 치중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육성보다 지도자의 강압과 폭력, 학생 선수 수업권 박탈 등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스포츠계 폭력의 악순환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끊이지 않았습니다.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의 심석희 선수 폭행/성폭력 사건, 프로야구 이택근 선수,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 역도 사재혁 선수의 후배 폭행 사건 등 종목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나 외부 기관의 관리/감독 등이 소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바뀐 새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지도자, 선수 등이 스포츠계의 인권침해나 비리를 알게 된 경우 스포츠윤리센터 등에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이 추가됐습니다. 폐쇄적인 체육계의 특성상 선수의 인권 침해가 내부적으로 은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입니다.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선수 5만9252명을 대상으로 폭력 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학생선수가 폭력 피해를 당했을 경우 신고할 수 있는 ‘학생선수 폭력 피해 신고센터’도 누리집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학생선수뿐 아니라 운동을 그만둔 사람, 피해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학부모, 친인척, 학교 관계자 등도 신고할 수 있습니다.
 
폭력으로 실력을 쥐어짜고 맞을 게 두려워 메달을 따낸 선수는 진정 행복할까요? 겉으로 보이는 성적보다 자신의 실력을 쌓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함께 격려하며 운동하는 즐거움이 더 중요합니다.


최화진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 한겨레 교육섹션 <함께하는 교육> 기자로 일하며 NIE 전문매체 <아하!한겨레>도 만들었다. 기회가 닿아 가정 독서문화 사례를 엮은 책 <책으로 노는 집>을 썼다. 현재는 교육 기획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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