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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중등팀이 고민한 것들
우리 집 쌍둥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때의 일이다. 태어난 지 오십일도 안 된 아기들은 새벽에도 자주 깨고 울고 먹었다. 그때 너무 밝은 전등을 켜면 아기들에게도, 잠자는 다른 가족에게도 방해가 되기에 손바닥만 한 휴대용 수유 램프를 하나 샀다. 톡 하고 두드리면 빛이 켜지는 동그란 램프. 은은하고 아늑한 빛이 좋아서 새벽까지 켜두곤 했다.
야근이 잦은 남편은 아기들이 잠든 후에야 집에 왔다. 나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웠다. 혼자 아기들을 봐야 하는 나도 힘들지만, 보고 싶어도 못 보고 아기들 잠든 얼굴만 보는 남편도 힘들 것이다.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빙그레 배냇짓하고 하암 하품하고 옹알옹알 거리는 그 예쁜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얼마나 아쉬울까 싶었다.
그날도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다. 아기들 잠든 방에 조용히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그날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착하게도 낮잠을 한참이나 잤어. 자다가 혼자 웃는 거 봐. 기분 좋은가 봐. 전에 컸던 옷이 벌써 이렇게 맞아. 방긋방긋 웃기도 잘 하지. 너무 예뻐.' 남편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아빠 미소를 지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애들 얼굴 못 봐서 힘들지 않아?"
"있잖아, 저 램프 참 잘 산 거 같아."
대답 대신 뜬금없는 램프 얘기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남편이 말했다.
"나 안방에 옷 갈아입으러 갈 때마다 애들 얼굴 봐. 둘이 나란히 누워 자고 있으면 램프로 얼굴 한 번씩 비춰보면서 잠자는 얼굴 한참 동안 봐. 요놈들 잘 자고 있나. 오늘은 얼마나 통통해졌나. 좋은 꿈 꾸고 있나. 진짜 너무너무 예쁘다. 하고. 그러기에 딱 적당한 빛이야. 저 램프 정말 잘 산 거 같아."
나는 램프를 든 남편을 상상했다.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손바닥 위에 램프를 올려두는 남편. 아기들 깰세라 조심스럽게 손을 뻗으면 남편의 손바닥 사이로 은은한 빛이 퍼지고, 그 아래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기들이 보이겠지. 그리고 남편은 지금처럼 웃고 있겠지. 보드라운 볼을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바라만 보는 남편. 행복하지만 짠한 풍경이었다.
"아빠들은 그래서 그랬구나 싶어. 어렸을 때 자고 있으면 아빠가 밤늦게 들어와서 막 뽀뽀하고 뺨 비비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아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하고."
"오빠도 이제 아빠가 되는 거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 사 오고, 겨울이면 호떡 사 오고 그런 아빠가 되는 거네."
우리 남편, 아빠가 다 됐네. 고개를 돌리니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아빠의 얼굴이 있다. 하루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거친 뺨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나는 남편을 불러봤다.
"램프의 요정."
남편이 돌아본다. 그리고 웃는다.
"정말이네. 나 램프의 요정이네."
아마도 우리 집 램프는 꽤 오랫동안 빛날 것 같다.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그럴수록 남편은 힘이 세져야 할 아빠가 되었으니. 그 언젠가의 깜깜한 밤에도 램프는 빛날 것이다. 잠든 아기들 곁에 선 램프의 요정은 허리를 구부리며 속삭이겠지.
'잘 자라, 우리 아기.'
나는 그 따스한 풍경 속의 빛이 되어 세 사람 다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고수리 | brunch.co.kr/@daljasee
'KBS 인간극장' 과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팀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카카오 브런치에 '그녀의 요일들' 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에세이<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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