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ㅣ안중근 편

안중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작성자 
아이스크림에듀 뉴스룸
작성시간
2024-04-19
안녕하세요. 공부를 좋아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아이스크림 홈런입니다.
아이스크림 홈런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 중 안중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 공부는 역시 아이스크림 홈런>



안중근
안중근(安重根)(1879-1910)은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로,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황해도 해주 출신입니다.

할아버지는 진해현감 안인수이며, 아버지 진사 안태훈(安泰勳, 安泰勛)과 어머니 조씨(趙氏) 사이의 3남 1녀 중 맏아들이며, 
아내는 김아려(金亞麗)입니다. 어려서는 안응칠(安應七)로 불렸으며 해외 생활 중에도 안응칠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해 자(字)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술과 사격을 연마하며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응하여 태어난 것으로 여겨져 어린 시절에는 "응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안중근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자 지도력을 발휘하여 동학군을 상대로 몇 차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심화되면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께 단지 동맹을 결성하고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 등 주요 인사 암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아 쓰러뜨린 후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후 뤼순 감옥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은 끝에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였습니다.

안중근의 의거는 한국 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의거 중 하나이며 그의 희생과 업적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은 민족주의자로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동양 평화론을 주장하면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의 행동이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의 행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교육 사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908년에는 평양에 삼흥학교를 설립하였고 돈의 학교를 인수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습니다. 
또한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서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사장과 함께 금연 단연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안중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으며 1970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번지에 기념관이 건립되었고 1979년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매년 10월 26일에는 남산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안중근은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로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동양 평화론을 주장하면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희생과 업적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매년 10월 26일에는 남산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중근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강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며 애국심이 높았습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발전과 독립을 우선 시하며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정신으로 다양한 분에서 활약하였습니다. 그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아갑시다.


 아이스크림 홈런과 함께 우리나라 역사 속 위인들 중 안중근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초등공부는 역시 아이스크림 홈런!
초등 무료체험 하기>
초등 료체험 하기>


 
무료체험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