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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밥 먹다가 엄마에게 혼났다

24개월째, 그러니까 2년째, 나는 부엌에 서서 밥을 먹고 있다. 우리 집은 거실과 부엌이 붙어있는 구조인데 공간이 좁아서 따로 식탁 놓을 자리가 없다. 특히나 부엌이 너무 좁아 조리대 겸 수납장 용도로 기다란 아일랜드 식탁 하나를 들여놓았다. 



아이가 없었을 땐 좌식 원목테이블을 거실에 두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아이 둘이 태어난 후로는 아무래도 위험해서 테이블을 치우고 놀이매트를 깔았다. 테이블이 없어진 거실에서, 아이들은 아기용 식탁의자에서 나는 아일랜드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수납장이 짜여진 아일랜드 식탁은 의자를 두기가 힘들다. 몇 번 의자를 두고 앉아서 식사를 해봤는데 무릎이 불편하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치워버렸다. 그때부터 그냥 서서 밥 먹기 시작했다. 당분간만 이렇게 생활하자고 하던 것이 어느새 2년이나 되었다.



엄마의 식사시간. 국에 밥 말아먹거나 반찬통 몇 개 꺼내 대충 먹는다. 먹는 도중 아이들이 다가와 보채면 안아 들거나, 식탁 위에 앉혀두고 밥을 먹는다. 밥그릇과 반찬통에 조그만 손가락들이 달려든다. 하는 수 없이 젓가락 내려놓고 달래고 놀아주다가 다 식은 밥을 먹는다.



누가 본다면 측은한 모습일 테지만. 사실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루룩 밥 먹기 바쁘다. 무사히 끼니라도 챙겨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참 별난 엄마라고. 그런데 나는 나처럼 서서 밥 먹는 엄마들을 꽤나 많이 알고 있다. 네 가족이 사는 집 한 채에 엄마가 여유롭게 온전히 밥 한 끼 먹을 장소가 하나 없다.



하루는 친정엄마가 올라왔다. 장을 잔뜩 봐온 엄마는 한나절 부엌에만 머물러 있었다. 좀 쉬라고 말려도 엄마는 요리하느라 바빴다. '너는 네 새끼 챙겨라, 나는 내 새끼 밥이 더 중요하다'며 엄마는 불고기 재워놓고 갈치조림이랑 된장국을 만들었다.



아이들 밥 먼저 챙기고 엄마랑 밥 먹을 시간. 여느 때처럼 아일랜드 식탁 위에 반찬을 놓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밥상은 어딨어?”

“애들 위험해서 치웠어.”

“그럼 밥은 어디서 먹어?”

“여기서 먹으면 돼.”



엄마가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묻는다.



“의자는 어딨어?”

“없는데.”

“그럼 서서 먹으라고?”

“응. 애들 때문에 어디 앉아서 먹기 힘들어. 우리 그냥 여기서 편하게 먹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가지런히 수저를 놓는데... 별안간 엄마가 소리를 빽 질렀다.



"누가 서서 밥 먹으래!"



사람이 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너 누가 서서 먹으라든. 애엄마라도 밥은 밥답게 챙겨 먹어.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아차 싶었다. 나는 이게 일상이 된 나머지 이상한 일이란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밥상 차렸으니 서서 드세요’하는 딸이 어디 있을까. 엄마는 그게 기막히기도 했지만, 딸이 맨날 서서 밥 먹는단 사실이 무척 속상했던 모양이다.



결국 치워두었던 원목테이블을 낑낑 들고 와 냉장고 앞에 놓았다. 위이잉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 들으면서 엄마랑 마주 앉았다. 훼방 놓는 아이들 어르고 달래며 엄마가 해준 밥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무가 잔뜩 깔린 갈치조림과 엄마가 가져온 된장으로 끓인 두부 된장국. 엄마는 가시 바른 갈치 살을 내 밥 위에 올려주었다. 어찌나 짭조롬하고 뜨거워서 속이 다 뭉클하던지, 잊지 못할 식사였다.



엄마가 말했던 ‘밥을 밥답게 먹는 일’이란 게 뭘까. 부엌에 서서 혼자 밥 먹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밥이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조급하고 불편하게 먹는 밥은 맛없었다. 아니, 맛이라는 걸 음미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로웠다.



밥이 가장 밥다워서 맛있을 때. 나는 그랬다. 계란프라이에 김치뿐인 밥상이라도 식구들과 둘러앉아 같이 먹는 밥이 제일 맛있었다. 매일 살 비비고 얼굴 맞대며 사는 가족에게 밥은 중요하다. 먹을 식, 입 구. 식구(食口)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 따뜻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우리가 가장 가깝고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시간. 그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겐 그게 밥을 가장 밥답게 먹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부엌에 서서 밥을 먹는다. 아이 둘 홀로 육아하며 나까지 챙기기에 아직은 시간과 체력이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씩 나를 위해 따뜻한 국을 끓여보고 생선도 구워본다. 집이 좁다고 혼자 밥 먹는다고 불평하기에,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라기에, 누가 해주는 밥이 그립다고 슬퍼하기에, 먹고사는 일상은 하루하루가 반복. 지겹고 지루하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고. 밥 지어 먹이고, 먹으며 다시 힘을 내야 한다. 놀랍게도 살아가는 일의 절반은 밥을 지어먹는 일이라는 걸 아이들 키우면서 깨닫는다. 그러니 제대로 힘내서 살아가려면 나 스스로를 챙기는 수밖에.



요즘은 가끔 아이들과 같이 앉아서 밥을 먹기도 한다. 사자와 바나나와 기차가 그려진 접이식 아기책상에 밥상을 차려 같이 먹는다. 두 돌이 지난 아이들은 제법 말귀를 알아들어서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구분할 줄 알고 자기 밥그릇에 밥을 먹는다. 말도 트여서 반찬 하나하나 이름 부르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맛있다’ ‘엄마 이거 먹어’하고 종알종알 시끄럽다.

물론 평화로운 집중력은 아주 잠깐, 나는 흘린 음식 치우고 대꾸해주기에 바쁘다. 밥상 차리고 치우는 일도 곱절은 힘들다. 그래도 같이 앉아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언젠간 거실에 매트도 치우고 원목테이블을 다시 놓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모두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땐 퇴근한 아빠도 놀러 온 할머니도 같이 앉아서, 우리 밥다운 밥을 맛있게 먹어보자고. 아이들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본다.



우리 집 식구들.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지 이제 2년 된 아이들과 엄마로 태어난 지 겨우 2년 된 나는. 오늘도 함께 밥 먹는 법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고수리 | brunch.co.kr/@daljasee

'KBS 인간극장' 과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팀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카카오 브런치에  '그녀의 요일들' 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에세이<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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