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선조의 지혜, 온돌 속 수학
작성자
박현선 기자
작성시간
2020-02-06
작성시간
업데이트 :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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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작년 9월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졌던 보물 제 1761호 경복궁 향원정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됐다. 정자에 온돌시설이 설치된 사례는 드물어 발굴 당시 화제를 모았다. 향원정의 온돌은 정자의 가장자리를 따라 도넛 형태로 형성돼 있으며, 방바닥 아래에 고래(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 여러 줄을 놓아 전체를 데우는 일반적인 온돌과 구조가 다르다.


정확한 건축 기록이 없어 도넛형으로 온돌을 놓은 이유는 밝히기 어렵지만, 궁능유적본부 김태영 사무관은 “1880년대 후반에 향원정 연못에서 스케이트대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창문을 열고 경치를 감상하는 사람을 위해 온돌을 도넛형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향원정은 보수 및 복원 공사 후 올해 7월 재개방 예정이다.


출처: 문화재청


서양보다 1000년 앞선 온돌 기술

온돌은 철기 시대부터 사용해 온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기술로, 서양보다 1000년 이상 앞선 우수한 발명품이다. 대부분의 전통 건축 양식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반면, 온돌은 여전히 실생활에 널리 쓰이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돌의 기술을 차용해 현대 난방에 적용하기도 한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전통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한국인들이 온돌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온돌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온돌의 어떤 점이 다른 난방법보다 ‘너무’ 좋은 것일까?


온돌의 우수성은 수학적/과학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온돌은 구운 돌로 바닥을 데우는 난방법이며, 아궁이에 불을 때어 그 연기가 방바닥 아래 공간인 ‘고래’를 지나 굴뚝을 빠져나가도록 설계돼 있다. 아궁이를 지난 열기는 구들장에 축적된 뒤 서서히 방열하며 실내 공기를 따뜻하게 유지시킨다. 바닥에서 발생한 복사열을 이용하므로 서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벽난로에서 발생하는 대류와 달리 방 전체 공기를 골고루 덥힌다는 이점이 있다.


벽난로나 히터는 전체 열의 20%만이 방 안으로 전달되고 연기가 직접 흘러들어 올 가능성이 높아 공기를 탁하게 한다. 반면 온돌은 연기가 구들장 아래에서 지나가기 때문에 쾌적한 난방이 가능하며 열을 저장해 뒀다가 발산하는 형태이므로 매우 경제적이다. 구조가 잘 된 온돌에서는 최대 5일까지도 그 온기가 지속된다고 한다.


온돌 구조 파헤치기


출처: 픽사베이


온돌이 훌륭한 난방 기술인 것은 단순히 연기를 아래로 지나게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온돌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조들이 얼마나 과학적인 이해에 뛰어났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온돌의 단면을 보면 평평한 통로가 아닌 미로 같은 복잡하면서 높낮이가 다른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최대한 열기가 오래 체류하도록 하면서 연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연기는 힘을 가하면 모양이 변하는 성질인 ‘유체’인데 유체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것이 매우 어렵다.


온돌은 이와 같은 유체의 움직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고안했다. 먼저 발생한 연기는 부넘기(불고개)라는 고개를 넘어 고래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통로가 급격히 좁아지면서 벤추리(Venturi) 효과가 발생한다. 벤추리 효과는 유체가 파이프의 수축된 부분을 흐를 때 발생하는 압력의 감소로,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지나면서 유체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즉 넓은 아궁이에서 좁은 부넘기를 지나면서 연기가 빨려 들어가듯 고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 부넘기가 없다면 상당량의 연기가 고래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궁이를 바깥으로 새어 나갔을 수도 있다. 벤추리 효과를 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으며, Q는 유체의 속도, A는 통로의 면적, p는 압력, ρ는 밀도를 나타낸다.


출처: 위키미디어


벤추리 효과로 추진력을 얻은 연기는 미로처럼 짜인 고래를 지나며 오랫동안 열기를 전달한다. 또한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 와류를 일으켜 ‘개자리’를 고래 처음과 끝에 설치했는데, 와류는 강하게 회전하면서 흐르는 유체의 소용돌이를 의미하며 마지막까지 열기를 한 번 더 잡아 두는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구들장도 같은 크기와 두께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열기가 강한 아궁이 가까운 쪽에는 두꺼운 돌을,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얇은 돌을 사용했다. 이 비율 역시 고래의 구조, 자연환경 등에 맞게 계산했다고 하니 정말 선조들의 지혜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예년에 비해 유독 따뜻한 이번 겨울이지만 여전히 한기가 드는 날에는 할머니 집에서 느끼던 훈훈하고 뜨거운 온돌방의 온기가 떠오른다. 작은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아랫목에서 뜨뜻이 지지고 가라’고 만병통치약처럼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가까운 온돌방이 있다면 찾아가 폐 속까지 뜨뜻이 덥혀 보자.



박현선 기자 | tempus1218@donga.com

동아사이언스 <수학동아>에서 수학 기사를 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수학’이란 학문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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