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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정보

아마존에서 역사를 ‘직구’했다

출처 : 클립아트코리아


'아마존에 없으면 세상에 없는 거'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마존은 별걸 다 판다. 의류, 보석, 신선 식품은 물론이고 클라우드, 스트리밍 같은 무형의 서비스까지 취급한다. 이런 아마존이 최근엔 교육 플랫폼 산업까지 진출했다. 지난해 11월 아마존 이그나이트(Amazon Ignite) 서비스를 론칭하고, 영·수·사·과 같은 주요 과목부터 음악·예술·교수법까지 다양한 교육 자료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시리얼과 바나나, 온라인 강의를 시청할 태블릿PC, 각종 학습 콘텐츠를 한자리에서 판매하는 진정한 만물상이 된 셈이다.

 

콘텐츠 자체를 아마존이 만들지는 않는다. 아마존은 플랫폼 역할만 하고, 가르치는 일은 일반인들이 담당한다. 아마존이 유명 교육회사도 아니고 플랫폼 하나 오픈했다고 명강사들이 몰려오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유인책으로 수익 분배 정책을 만들었다. 강의 판매 수익의 30%만 아마존이 가져가고 나머지 70%는 모두 강사에게 돌아간다.

 

아마존 몰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른 플랫폼엔 없는 강점이다. 검색은 구글에서 하고 정작 물건은 아마존에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쇼핑 플랫폼으로서의 아마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그나이트 강사 입장에선 엄청난 수의 잠재 수강생을 확보하는 셈이다. 현재 아마존의 유료회원제인 프라임(Prime) 회원 수는 약 1억 5,000만여 명. 이들 중엔 학구열에 불타는 초중고 학생이나, 이직을 위해 공부 중인 직장인도 있을 것이다. 콘텐츠 질이 높고 가격만 적당하다면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마존 이그나이트 콘텐츠는 그 종류만큼이나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고대 중국 역사, 창의적 글쓰기 수업은 각각 3달러고 경제학 교육에 대한 통합 문서 강의는 29.95달러다. 우리 돈으로 3,600~35,000원 사이니 일반 인터넷 강의와 비교해 부담이 덜한 편이다. 물론 싼 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콘텐츠 질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아마존은 검증된 지식인만 글을 올리게 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다. 폐쇄형 플랫폼인 셈이다. 회사 측의 정식 승인을 받아야 글을 게시할 수 있는 카카오 ‘브런치’와 비슷하다.

 

아마존이 처음부터 폐쇄형 플랫폼을 기획한 건 아니다. 지난 2016년만 해도 아마존은 구글의 유튜브처럼 열린 플랫폼을 지향했다. 당시 선보인 교육 플랫폼 ‘인스파이어’(Inspire)는 교사끼리 자료를 공유하는 콘셉트로, 누구나 정보를 올리고 내려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러나 아마존 쇼핑몰과 연동되지 않았던 탓인지 성과가 저조했다. 인스파이어 사이트를 드나드는 사람이 워낙 적었다. 남의 강의 자료를 자신의 것인 양 올려놓고 돈을 버는 가짜 지식인이 나와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다. 출범한 지 4년이 넘도록 베타서비스 중인 걸 봐도 인스파이어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존은 이그나이트로 전보다 한층 개선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유튜브란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유튜브 유료 회원인 뮤직·프리미엄 이용자는 2,000만 명으로 아마존 프라임에 뒤지나, 한 달 무료 이용자 수는 무려 19억 명이다. 세계 인구의 24%가 유튜브를 보고 있다. 이용자가 워낙 많다 보니 재야의 고수들이 알아서 모이고, 이들이 만든 양질의 콘텐츠는 다른 이용자를 불러오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사람이 몰리는 곳엔 광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콘텐츠에 값을 매기지 않아도 수익이 발생하는 이유다.

 

아마존의 학습 플랫폼 실험은 단순히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그나이트는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먼저, 직업 강사가 아닌 일반인이 제작한 지적콘텐츠가 교육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지 가늠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실험 무대는 전 세계다. 지금 당장은 미국에 있는 사람만 콘텐츠를 등록할 수 있지만, 구매는 누구나 가능하다. 이그나이트가 활성화되면 우리나라에서 아마존 직구로 물건을 구매하듯 거리와 국적을 뛰어넘는 교육쇼핑이 정착됐다는 뜻이다. 또한 폐쇄형 학습 플랫폼의 가능성을 엿볼 계기이기도 하다. 이그나이트 유튜브와의 경쟁을 이겨 내고 정착한다면 플랫폼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윤석진 기자 | drumboy2001@mtn.co.kr

머니투데이방송 교육산업 담당. 기술 혁신이 만드는 교육 현장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쉬운 언어로 에듀테크 사업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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