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걱정 없는 방학 공부법
쉬면서도 성장하는 방학, 홈런으로 학습 루틴을 지켜주세요어느 소품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가게 안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바짝 깎은 까까머리에 초점이 흔들리는 눈, 벌어진 입술 사이로 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자는 지적장애를 가진 것 같았다.
남자가 걸어오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흩어졌다. 점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주시했다. 남자는 ‘새여핀 새여핀’ 소리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새여핀 새여핀’. 그런데 남자의 말을 잘 들어보니 색연필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침 내 앞에 있던 색연필 세트를 내밀었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미이 새여핀 미이”
아, 미니 색연필. 나는 동그란 통에 든 미니 색연필을 다시 집어 주었다. 그제야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꾸벅 인사까지 하고 돌아섰다. 커다란 남자가 제 손바닥보다 작은 미니 색연필을 들고 가는 뒷모습은 천진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미안했다. 단지 미니 색연필을 사려고 한 것뿐인데 그를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고 말았다.
가끔 공공장소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마주친다. 대부분 비슷한 몸집과 표정을 가졌고 속을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묘한 불쾌함을 느끼곤 황급히 자리를 피하곤 했다.
나와는 다른 사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마주하는 일은 두렵다. 불쾌하기도 무섭기도 하다. 어쩌면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잔뜩 예민해져 경계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마치 낯선 대상을 마주한 고양이가 털부터 바짝 세우는 것처럼.
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 혹은 ‘싫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거나, 한 번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없이 경계하고 혐오하는 태도는 결국 모두를 나쁘게 만든다. 소외된 사람들은 더 외롭게, 이기적인 사람들은 더 편협하게, 차가운 세상은 더 각박하게. 아마도 그런 게 편견이라는 거겠지.
글 쓰며 사는 사람으로 나는 편견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부닥치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부터 치고 말았다. 남자의 말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나는 그를 '이상한 사람' '싫은 사람'으로 단정 짓고 피해버렸을 것이다. 부끄러웠다. 미니 색연필을 들고 가던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앞으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지켜보리라 다짐했다.
얼마 뒤 쇼핑몰에서 덩치 큰 남자애 하나가 내 어깨를 세차게 부딪치고는 쿵쿵거리며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갔다. 부딪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주변 사람들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한 아주머니가 비집고 내려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아이를 뒤따랐다. 죄송하다는 인사가 습관이 된 탓인지, 내리꽂는 시선이 따가운 탓인지. 아주머니의 어깨는 굽어있었다.
“주호야, 엄마랑 같이 가야지.”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손발을 가만두지 못했다.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혼자 빨리 내려가고 싶지만 그래도 엄마를 기다려주는 눈치였다. 잰걸음으로 내려간 아주머니가 아이를 붙잡았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는 잠잠해졌다. 엄마는 아이에게 귓속말을 속삭이며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런 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구겨졌던 얼굴들이 잔잔해졌다. 사람들도 에스컬레이터도 조용히 내려갔다.
말과 눈총이 사라진 조용한 시간. 나는 사람들이 모자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느낄 수 있었다. 구겨진 얼굴을 펴고 너그럽게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따뜻해졌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처럼 느릿느릿 천천히, 그렇게 편견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이 이름이 주호였구나. 나는 주호 엄마의 굽은 어깨를 곧게 펴주고 싶었다.
고수리 | brunch.co.kr/@daljasee
'KBS 인간극장' 과 'MBC TV 특종 놀라운 세상'팀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카카오 브런치에 '그녀의 요일들' 이라는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뭉클하면서도 따뜻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에세이<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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