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도 교육이다 –
아이스크림에듀의 출판 철학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연재안내 - 「책으로 노는 집」 2012년 최화진, 김청연 저
「책으로 노는 집」은 자연스레 책을 접하며 가족만의 독특한 독서문화가 있는 아홉 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6년 전, 내가 만난 책 속의 아홉 가정은 독서를 따로 시간을 두고 특별한 활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그 자체가 삶에 녹아 있었다. 이 연재에서는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정 내 독서 문화를 이야기하려 한다. 필요에 의해 책을 찾거나 읽다가 포기한 분들, 가족들과 서먹서먹해 대화가 어려운 분들은 아홉 가정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길 바란다. 조금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최화진
서점가에 치유를 돕거나 실제 치유 경험을 담은 책들이 유행이다.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책, 동화 속 짧은 위로의 말을 엮은 책, 자신감이 부족하고 지친 이들에게 공감해주는 책들이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책만큼 치유에 효과적인 매체도 없다. 흔히 머리가 복잡하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라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내적 갈등이 일어나는 지점을 마주하는 게 중요하다.
책은 그것을 읽은 사람에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고민과 갈등을 꺼내놓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정 독서 문화를 일군 가정은 책으로 마음의 갈등과 고민을 치유하기도 한다.
조범희씨는 어릴 시절부터 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그에게 독서의 즐거움과 의미를 알려준 건 다름 아닌 아내였다. 아내 윤여화씨가 추천해준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자신의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조씨는 어린 시절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탓에 자신감도 부족하고, 아픔을 가진 채로 성장했다. 아내는 남편이 성장기에 풀지 못했던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내적 불행’과 관련한 책을 추천해주곤 했다. 아빠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딸들한테도 자연스레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조씨가 쌍둥이 딸을 양쪽 무릎에 앉혀 두고 그림책을 읽어주게 된 것도 이런 깨달음 덕분이었다.
정혜원씨는 어린 시절 공부 잘하는 언니와 늘 비교를 당했다. 주변의 시선 탓에 스스로를 ‘못난이’로 여기게 됐다. 결혼하고 딸을 낳은 후 어릴 때 치유하지 못했던 상처가 드러났다. 자신과 달리 내 딸만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에 엄청나게 많은 책을 사들였다. 책장에 책이 꽂히는 순간,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엄마에게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마주하게 됐다. 육아책을 뒤지다 “아이의 문제는 사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정씨의 관심은 육아책에서 심리학책으로 향했다. 심리학 관련 서적을 열심히 찾아 읽으면서 사춘기 때 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됐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내 딸 만은 그렇게 자라면 안 된다”라고 했던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이 풀지 못했던 상처 때문이었다.
그는 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누가 좋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하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관심을 기울인다. 이전에는 베스트셀러, 유명인의 추천책이라면 무조건 샀지만 지금은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게 한다.
정씨의 남편도 “예전에는 마구잡이로 아이 책을 사서 쌓아뒀는데 지금은 자신이 먼저 책을 읽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다 자란 상태로 결혼하고 부모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독서 문화가 있는 가정을 보면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단단한 인격체로 보인다. 아마도 부모가 치유 독서의 경험을 토대로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혜안을 갖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조씨나 정씨도 책을 읽으며 아이에게 자신이 겪은 갈등이나 상처를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읽고 쓰는 일은 자연스레 이어진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행위다. 책을 읽다 보면 뭔가를 끄적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깊게 들여다볼 수도 있다. 아이와 함께 독서 일기를 써 보면 어떨까. 책을 읽고 주인공의 장점을 찾아내 나의 모습과 비교해보자.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나라면 어땠을까’ 비교해보고 짧은 글을 쓰는 것도 좋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의 고민과 생각이 드러나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그 내용을 두고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에게 쌓인 갈등을 풀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깨닫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답답함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면, 책에게 말을 걸어보자. 책이 자신에게 이런 저런 일을 물어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 앞서 만났던 아홉 가정을 통해 알게 된 가정 독서 문화의 공통점을 꼽아서 소개하고 있다. 각 가정의 사연이 궁금하시면 앞의 내용을 살펴보시길 바란다.
최화진
아이들을 좋아하고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 한겨레 교육섹션 <함께하는 교육> 기자로 일했다. 기회가 닿아 가정 독서문화 사례를 엮은 책 <책으로 노는 집>을 썼다. 현재는 교육 기획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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