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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중등팀이 고민한 것들
머리가 엉망이다. 내가 파마를 언제 했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년 전 즈음에 디지털펌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일년에 상하반기 두 번씩 파마를 했는데, 이번엔 어째 머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나 보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파마를 해야겠네..”라고 중얼거리니 내 뒤에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 나도 파마할래!
나도 파마해 줘!”
라고 말한다. 선이는 타고나길 머리숱이 많고 직모여서 아침에 머리 손질을 해 줄 때마다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파마를 하면 머리를 땋기도 묶기도 좋다는 주변 엄마들의 말을 듣고 안 그래도 아이들에게 파마를 해 줄 참이었다. 하지만 파마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아이들이 파마를 잘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그동안 넌지시 ‘파마할래?’라는 나의 물음에 항상 '아니오'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어서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선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주변 여자 친구들이 하나둘 파마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선이가 보기에 이뻐 보였던 것인지 오늘은 먼저 파마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민이는 언니가 하겠다니 본인도 하겠다고 나섰고.
“그래! 엄마랑 같이 파마하자!
우리 셋이 한꺼번에 하는 거야!
재밌겠다!”
파마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한곳에서 잘 움직일 수도 없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고 그동안의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 줄 여러 가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충전을 하고 보조배터리도 충전하여 챙기고 마실 음료수와 입을 달래 줄 간단한 간식도 챙겼다. 혹시나 아이들이 동영상 보는 것마저 지루해할까 몇 권의 동화책과 심지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인펜과 종합장도 챙겼더랬다. 누가 보면 어디 여행 가나 보다 생각할 정도로 아이들 물건을 한 짐 챙겨 동네 미용실에 도착했다. 작년에 생긴 미용실이었는데 나름 이름 있는 헤어 디자이너의 분점이기도 하고 인테리어도 세련되고 무엇보다 작년 내가 받은 디지털펌이 꽤나 잘되어서 그곳에서 나의 파마와 아이들의 인생 첫 파마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을 찾은 또 하나의 이유. 카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있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 주스, 차뿐만 아니라 견과류도 듬뿍 준다. 아이들 챙겨 미용실 가느라 쏙 빠진 정신을 이곳의 커피로 달랬다.]
주말 늦은 오전, 미용실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미용실 직원은 이곳에 아이들이 자주 와서 머리를 한다고 했지만 이날 아이들은 선이와 민이뿐이었다. 어른들만 있는 곳에 작은 아이들이 등장하니 금방 눈에 띈다. 서먹하여 조용한 아이들을 미용실의 견습생들이 '어머~'하며 반겼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 다시 만난 헤어 선생님과 나와 아이들의 머리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작년처럼 디지털펌을 하기로 했고 선이는 머리가 길어서 열펌을, 그리고 민이는 아직 어리고 머리가 짧아 일반 파마를 하기로 했다. 순서가 가장 오래 걸리는 나부터 먼저 시작되었고 그다음이 선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이가 파마를 시작했다.
(왼쪽) 집에서 가져간 간식을 까먹으며 역시 집에서 가져간 책을 함께 보고 있는 선이와 민이 / (오른쪽) 파마를 하고 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 민이. 이쯤 되니 ‘이 두 여자아이들이 미용실에서의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가져간 놀잇거리들을 즐기며 대단히 얌전하게 기다려 주어서 미용실 직원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다. 기대 이상으로 협조적이었던 아이들 덕분에 나도 편안하게 파마를 받았고 선생님도 편안하게 시술할 수 있어서 우리 세 모녀의 파마는 매우 잘되었다. 드라이까지 끝낸 아이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어색해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며 쿡쿡 웃었다.
(왼쪽) 파마를 모두 풀고 드라이를 기다리는 선이의 옆모습 / (오른쪽) 드라이까지 모두 끝내고 집에서 가져온 핀을 꽂은 민이
고실고실해진 머리를 한 나의 두 딸은 전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선이는 그야말로 분위기 여신이었고, 민이 머리는 마치 외국아이 머리 같아서 계속 쓰담쓰담 하게 만들었다. 두 아이의 생애 첫 파마인만큼,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의미가 컸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의미에 대해 미용실 선생님 역시 공감을 하시고 정말 정성스럽게 두 아이의 머리를 만져 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도 파마를 하는 것은 지루하고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시간이라는 인상을 남기게 된 듯하다.
우리 셋 모두 뭔가 풍성해졌다 ^^
나 역시 딸과 함께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틈틈이 아이들 신경 쓰느라 평소만큼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오가며 나를 알은체하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파마를 받는 것이 꽤나 재미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훨씬 더 많이 자라면 그땐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니 앞으로 이 아이들과는 재미난 일들만 있을 것 같아서 문득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선이야 민이야
다음에 엄마 파마할 때도
꼭 같이 하자!”
“그래요, 같이 가요.”
KYONG / 박경미
딸 둘의 엄마이자, 14년차 제품 디자이너. 워킹맘으로서 폭풍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잔잔한 일상으로 추억되는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네이버 포스트에서 <두 아이 워킹맘의 기억 저장소>(https://post.naver.com/kyong_pkm)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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